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글로스터 곶 전투 (문단 편집) == 결과 == 사실 미군은 힘들여 섬의 서부를 장악하기는 했지만, 니미츠 제독이 이끄는 태평양해역군이 생각보다 너무 빨리 북상하는데 성공하는 바람에 별 다른 전략적인 의미는 가지지 못하였다.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라바울 점령을 이미 포기한 상태에서 실질적으로 라바울을 무력화시킨 것은 1943년 말 부터 이뤄진 부건빌섬 공격, 에드미럴티 제도 점령과 태평양해역군에 의한 트럭섬 무력화에 따른 보급선 차단 및 제공권, 제해권 상실이었다. 특히, 상술한 바와 같이 트럭섬이 무력화된 이후부터 라바울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. 한편, 미군은 과달카날보다 더한 지독한 정글과 늪에 시달렸는데, 이 때문에 많은 병사들이 [[PTSD]]에 시달리기도 하였다. 이는 [[더 퍼시픽]] 4화에 잘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. 해병 제1사단은 글로스터 곶 전투 이후 파부부로 되돌아가 재정비를 하였다가, [[태평양 전쟁]] 최고의 [[생지옥]] 중 하나로 이름 높았던 [[펠레리우 전투]]와 [[오키나와 전투]]에 각각 참전하게 되었다. 양 군대의 피해는 아래와 같다. * 미군: 전사 310명 | 부상 및 실종 1,083명 * 일본군: 전사 1,000여명 | 부상 및 실종 알 수 없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